전직 프로 농구선수 국보급 센터

예능인 서장훈



서 장 훈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했던 농구 선수의 이름이다. 농구대잔치 시절부터 프로농구 시절까지 언제나 난 서장훈의 팬이었고 그가 최고의 농구 선수라고 생각했었다. 서장훈이 농구선수이던 시절 그를 싫어하던 사람들이 부지기수였고 왜 싫으냐 물어보면 그냥 싫다에서 부터 각양 각색의 대답들이 나왔었다. 내 주위에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는데 되려 은퇴 이후로는 그를 좋아하는 팬들이 상당히 많아지면서 농구 선수로서가 아니라 예능인으로만 기억이 되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다. 



연세대학교가 농구대잔치를 제패하던 시절 서장훈은 우지원, 이상민, 문경은, 김훈 등과 함께 실업팀을 물리치고 연세대를 아마 농구 최강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93-94 농구대잔치 시절 연세대학교 1학년에 입학하여 연예인 못지 않은 인기를 누리던 선배들과 함께 연세대를 우승 시켰고 94-95 시즌에도 그 활약을 이어갔다. 이후 미국 유학길에 잠시 올랐던 그는 1년만에 다시 복귀하여 96-97시즌과 97-98시즌을 우승시켰다.



서장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선수는 역시 휘문중고 1년 후배인 현주엽이다. 서장훈과 현주엽은 중고등학교 시절을 함께 보냈고 서장훈이 1년 먼저 연세대학교에 진학하자 후배인 현주엽은 서장훈이 없는 고려대학교를 선택하였다고 한다. 서장훈의 그늘을 피해 고려대에 진학하였으나 농구대잔치 시절의 현주엽은 뛰어난 기량에도 불구하고 팀을 정상에 올려놓지는 못했다.



농구대잔치 시절 서장훈은 KBL이 시작되기 전인 96-97시즌까지 두번을 우승시켰고 두번의 MVP를 차지했었다. 실업팀이 프로 무대로 자리를 옮겨간 97-98 농구대잔치는 당연히 연세대와 서장훈의 차지였다. 94-95 시즌 농구대잔치에서도 서장훈이 목부상을 당하지 않았다면 우리나라 농구대잔치 역사도 프로농구 역사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도 더욱 높았을 것이다. 

 


94-95시즌의 연세대는 정규 시즌에서 13승 무패로 1위를 차지하며 8강 플레이오프에 진출해서 삼성과 8강 플레이오프를 펼쳤다. 1차전을 승리한 연세대는 2차전을 내주고 3차전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경기에서 서장훈은 삼성전자의 박상관에게 뒤통수를 가격당하는 파울을 당하고 그대로 실신하며 심각한 부상을 당하게 되었고 삼성이 4강에 진출하게 되었다. 이후 그는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이때 입은 부상은 선수생명뿐만 아니라 생명까지 위태했을 정도로 큰 부상이었는데 이후 프로 생활을 하면서 다시 목과 관련된 부상으로 서장훈의 목에는 보호대를 차고 있는 모습이 더욱 익숙할 정도였다. 94-95시즌의 부상만 아니었다면 서장훈이 미국으로 떠날 일도 없었을 것이고 농구대잔치 역사도 바뀌었을 것이다. 



95년에 미국으로 떠났던 그는 1년 만에 국내로 돌아와 2년 더 연세대 농구부를 농구대잔치 정상에 올려놓고 98-99시즌 SK 나이츠에 입단하였다. 당시 신인임에도 불구하고 최고대우를 받고 입단하였고 입단 첫해에 신인상을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리바운드왕을 차지하였으며 프로농구 무대에서도 그의 존재를 철저하게 부각시켰다. 이후 99-00 시즌 그는 팀을 프로농구 정상에 올려놓으며 MVP를 차지하였다. 



2008년 11월 19일에는 프로농구 역사상 최초로 10,000득점을 달성하였다. 10,000 득점은 서장훈이 프로농구 무대에서 활약한지 10번째 시즌만에 달성한 기록으로 개인통산 462경기만에 10,000득점 달성으로 경기당 21.6점이 넘는 평균 득점기록으로 매년 꾸준히 활약한 덕분이었다. 그만큼 서장훈은 꾸준한 선수였고 국내 최고의 센터이자 득점왕이었다. 



서장훈 프로필


1974년 6월 3일생

학동초 - 휘문중 - 휘문고 - 연세대

키 207cm

1998년 SK 나이츠 입단

2013년 부산 KT소닉붐 은퇴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농구 은메달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농구 은메달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농구 금메달

농구대잔치 베스트5 4회, 우승 3회, MVP 3회



프로농구 경력


KBL 우승 2회

KBL MVP 2회

KBL 챔피언결정전 MVP 1회

KBL 올스타전 MVP 1회

KBL 리바운드상 1회

KBL 베스트5 8회



KBL 프로농구 팀 경력


1998년 SK나이츠 입단

2002년 삼성 썬더스 이적

2007년 KCC 이지스 이적

2008년 인천 전자랜드 이적

2011년 KG 세이커스 이적

2012년 부산 KT 이적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던 그는 2012-2013 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하였다. 그가 마지막으로 프로 무대에서 뛰었던 2013년은 그의 나이가 마흔이었고 체력적인 부담이나 수비 능력 저하등이 오기는 했으나 프로 무대에서 활약하는 동안의 그는 최고의 농구선수였고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였다고는 하지만 오해로 빚어진 부분도 많았다.


경기중에 웃는 모습을 거의 볼 수 없었던 그였으나 최근의 활동에서는 그 시절보다 뭔가 편안해 보인다. 죽기살기로 농구선수로 살던 시절보다 지금이 더 행복해서라기 보다는 승부의 세계에서의 그와 지금의 그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오정연 아나운서와의 결혼으로 이슈가 되었다가 결국 이혼으로 더 큰 이슈를 낳았으나 프로농구 선수로서의 그를 보는데 있어 그닥 중요한 문제는 아닌듯 하니 패스!



프로농구 무대에서 16시즌을 소화한 서장훈은 총 688경기에 출전하여 경기당 평균 33분 가량을 뛰었고 19.23점의 평균 득점을 기록하였다. 7.6개의 평균 리바운드를 기록하였다. 데뷔 초에는 25점대의 평균 득점과 10개의 평균 리바운드를 기록하며 평균으로 더블더블을 기록할 정도로 최고의 기량을 보유한 선수였다.



30대를 넘어서며 기록이 다소 떨어지기는 했으나 평균 득점 10점대 이상을 기록하였고 센터로는 보기드문 야투 정확도를 가진 선수였다. 프로농구에서 기록으로 서장훈을 깔수는 없다. 그만큼 가장 기량이 뛰어난 선수였다. 그가 기록한 13,231득점은 여전히 깨지지 않고 있다.



통산 득점에서 8,000점부터 13,000점까지 모두 최초의 기록을 가지고 있고 4,000 리바운드와 5,000 리바운드도 최초로 달성하였다. 당분간 그의 기록을 깰만한 국내 선수는 나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프로통산 그가 달성한 리바운드는 5,235개이며 야투와 자유투 성공갯수도 1위에 올라있다.



프로 입단과 동시에 프로 농구 무대 연봉 탑을 찍었고 1998년부터 2006년까지 9년 연속 프로농구 연봉왕에 올랐다. 재테크를 잘해서 건물주로 지금은 더 유명하지만 9년 연속 연봉 1위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대단한 선수였는가를 알수 있는 대목이다.



프로농구는 샐러리캡이라는 것이 존재해서 한팀에 정해진 연봉을 넘어서지 못하게 되어있는데 그가 받은 연봉은 샐러리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초반에서 30%후반에까지 이를 정도로 비중이 엄청난 선수였다.



은퇴 이후 연예계에 데뷔한 그는 지금은 가장 잘나가는 예능인 가운데 한명이 되었다. 라디오스타를 비롯한 각종 예능에 게스트 출연에 많은 프로그램에 고정으로 출연하며 훌륭한 입담을 선보이고 있다. 농구 선수 시절에는 보기 힘들었던 웃음을 보이는 요즘이 그 때 보다 더 나아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의 그가 농구 선수 시절의 그 보다 더 팬들에게 사랑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인듯 하다. 예능인으로의 그가 아닌 농구선수로서의 그를 기억하는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 진지하게 죽기살기로 임하며 자신의 직업에서 최선을 다하고 은퇴한 그가 웃을 수 있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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